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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전시] 더스크랩 the scrap

더스크랩 전시에 다녀왔다. 

신설동역 3번출구에 나와 꼬깃꼬깃 접어서 가지고간 네이버 지도의 인쇄물을 보는 사이, 상수동 거리에서 볼수있을 법한 차림의 여성이 스맛폰을 들여다보며 빠르게 지나갔다. 그도 전시장을 찾아가는 거구나 직감하는 찰나 나를 지나쳐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물론 그의 모습을 전시장에서 볼수있었다)

80년대에 주거지역에서 지어졌을법한 흔한 하얀 타일외관의 건물을 개조한 건물이었다. 카드결재를 하고 들어갔다. 입장료 3천원이 카드결재가 안되면 어뜩하지 하면서 우리은행 ATM기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걱정은 기우였다. 입구는 유니클로를 연상케하는 하얀색 계산 카운터에 대여섯의 계산직원 스탭들이 빠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라운지에는 요즘 사진잡지인 보스톡이 놓여있었다. 요즘 사진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다 흥미롭게 지켜보았을만한 잡지이다. 나같은 회사원 복장의 인물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 2-30대의 젊은 여성이었다. 나갈 때 안사실인데 입구 바로 옆에는 박다함님이 음악을 틀고 있었다. 인디문화씬에서 이름을 많이 보아왔다. 외모는 잘모르나 콘솔에서 만지작 폼이 그로구나 싶었다.

일단 내가 여기를 간 이유는 집에 걸만한 사진을 싸게 구입할수 있겠거니였다. 게다가 작가들이 후덜덜했다. 구본창, less, 김영나, 김옥선 등등 평소에 관심있게 지켜보던 아티스트들이 100명중에 15명 가량 되었다.  이들의 작업을 단돈 5천원에 구매할수 있다는 점이 무진장 흥미로웠다. 특히 나는 이번에 김영나의 그래픽과 less의 still life 사진을 구매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왔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작업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5천원으로 이런저런 경비대고 약간의 이윤도 남기려면 좋은 품질의 사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최측 역시 이것을 돈을 받고 판다는 것을 미술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퍼포먼스로 기획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전시로서 매우 흥미로웠다. 

아티스트에게서 받은 이미지 파일을 일괄적으로 프린트하여 판매했다. 여기서 드는 첫번째 의문은 그것이 과연 미술작품이냐는 것이다. 에디션은 없으나 솔드아웃(판매완료) 딱지가 붙어있다는 말은, 공급에 제한을 둔다는 말이다. 에디션은 없으나 수량은 제한이 있다? 솔드아웃이 주는 묘한 경쟁심을 기획자는 노린 것이 아닐까? 어멋, 이건 꼭 사야해 머 이런... 

실제 프린팅을 아티스트가 하지않고 주최측에서 일괄적으로 하는 방식 역시 사진의 오리지널리티가 과연 있느냐하는 재미있는 문제제기가 될 것이다. 거기에다 참여작가란에 100명의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보는 사람이 전시장에 놓인 작업이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사진작가의 전시로 바라보게 하였을 것이다. 

이 전시가 차용하지 않고 버린 것은 아티스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구매가 확정된 이후에 이미지의 출처를 알려준다는 점이다.  이로서 아티스트의 경중과 경력을 작품 판매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미술장터의 법칙을 무시했다. 이 지점이 가장 흥미롭다. 작품이력을 판매대에서 지운다는 것은, 판매자에게나 구매자에게 큰 도박이다. 작품을 사기 위해서는 이사람이 누군지 아는 것은 이 작업의 가치를 매기는데 큰 기준이자 마케팅 포인트인데 그것을 지운다?

여기서 기획자가 이 장터를 연 제1의 목적이 아트페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전시된 작품(?)을 미술로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프린트의 퀄리티, 이미지의 독창성 등등 여러면에서 흔히 말하는 전시작의 그것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가 재밌었던 이유는 이들의 생각이었다. 사진을 돌아다니면서 번호를 적고, 썸네일을 연상케하는 대형 프린트 앞에서서 이미지를 골라 내는 행위 자체가 사이버 공간상에서 우리의 행위를 그대로 현실속에서 재현하는 듯했다. 

간혹가다 붙어있는 sold out 표딱지가 나의 장바구니에 담긴 사진에 붙어있기를 원하지 않는 듯이 바삐 움직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영락없이 온라인 세일기간에 득템하기 위해 득달같이 웹에 접속하는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표면상으로는 3,5만원으로 유명작가의 사진을 소장할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점이 기발했고, 실제로 나같은 사람도 보러 갔다. 

사진 한두개 소장하고 싶으나 어마무시한 가격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우리는 블랙프라이데이나 유니클로 감사제를 보고 지갑과 마음을 열듯 3만원에 5장, 5만원에 10장 두개의 패키지에 충실히 반응했다.  바보가 아닌이상 5만원이면 한장당 5천원에 작품을 구매할수 있다! 생각을 할것이고, 3과 5 사이를 아주 약간이라도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돈을 내고 구매한 것은 스크랩한 행위 자체였다. 손에 들고간 이미지는 그것을 사간 사람들 입장에서는 돈을 준 대가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기획자가 노린 것은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행위를 상품으로 내 걸었으며, 실제 몇몇 블로그의 포스팅을 보면 구매한 사진을 액자가 아니라 투명비닐 폴더에 끼워놓고 보관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액자란 것이 작업에 대한 리스펙의 마지노선 아니던가. 재밌는 것은 더스크랩은 액자 프레임을 15,000원에 판매했다. 사진보다 액자가 더비싼 광경. 정말로 이들은 구매자들의 소장에는 관심이 없었을수도 있다. 

이미지를 소장하기 보다는 소비하는데 친숙한 요즘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전시기획자나, 관람자 모두 그 의도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참 영리한 전시이자 재미있는 전시이다. 

그래서 이것은 페어가 아니라 전시라고 말하고 싶다. 미술에서 아직도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방 날리는 전시이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세대에 딱 적합한 전시이다. 딱 3만원어치 이미지 하나 산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가 값진 이유는 현재 씬에서 입지가 탄탄한, 한마디로 아쉬울것 하나없는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희미한 연결고리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보는 사람에게는 책1-2권값에 아티스트의 사진작업을 소장한다는 만족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가격 책정을 참 잘했다. 상업적으로도 센스가 참 좋다라고 느껴진다. 

실제로는 소비에 가까울 것이다. 패스트패션 처럼 어딘가에 당분간 걸려있다가 이사갈때 정리되는 그런 사진처럼 당분간의 희락은 제공하겠지. 가벼운 듯 보이는 이 전시에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문화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