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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

[책] 내가 보고싶었던 세계, 석지영

자서전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라는 것이다. 퇴근길 40분, 라면 물끓이는 5분, 아이들 재우기 직전에 이불속에서 10분. 짦은 시간이지만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 속에 잠시나마 들어가서 다른 세계를 맛보는 시간은 중독적이다.  

최근에는 조지 w. 부시의 결정의 순간, 그리고 이책, 석지영 하버드 로스쿨 교수의 자서전을 재미있게 읽었다. 특별히 석교수의 책은 언제든지 책장속에 넣어놓고 읽고 싶을 정도였다. 단순한 한 재미교포의 성공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대리만족과는 거리가 먼 감동이었다. 

발레, 피아노, 문학을 거쳐, 마지막으로 법에서 비로소 완성된 자신의 세계에 안착하는 장면은 이 자서전의 클라이막스라 생각한다. 그것은 한 판을 클리어하고 다음 판의 보스를 깨러 한단계 올라가는 정복기라기 보다는, 여기저기 떠다니는 여행기와 같았다.

이 책이 주는 감명은 그의 여정이 책 문장마다 묻어나온다는 점이었다. 책의 초중반에는 어떤 사실과 정서의 나열이 이어져 인지하기가 어려웠다. 중후반 로스쿨에서 자기 자리를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철학과 가치관이 빼어난 문장에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 이 책은 이 사람이 직접 썼구나. 영문책이 원본인지라 번역을 아무리 잘했다 했더라도 있었을법한 간극에도 그 진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실제적인 문제 역시 해결했는데, 최근 공부하며 준비하는 보고서가 막혀있어 나름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공부하면서 쓰는거라 나 역시 그 주제에 확신도 자신도 없고, 이 것을 전문가들이 볼텐데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석 교수는 하루에 1페이지씩만 써나가도 된다. 그리고 100% 알고 쓰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써나가라는 조언은 매우 큰 힘과 구체적인 해결책을 주었다. 자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며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부분에서 한 명의 멘토를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