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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미술가] 온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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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보면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들 방에는 잡지에서 오린 사진들로 벽을 도배해놓은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붙여놓은것 같지만 그 벽이야말로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는 보물과 도 같을거라는생각을 해봅니다.  영화속 아티스트의 벽을 평론가 임근준은 지난주 강의에서 '오타꾸적'  '데이터베이스'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정의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데이터베이스는 대학교수의 교재노트와도 같이 한개의 작품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겁니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는 어디까지나 아티스트의 노트속에만 머물러있었을뿐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작품으로 가치는 인정받지 못했지요. 물론 어디 크리스티경매에서 피카소의 작업 노트라고 해서 경매에 올라 고가에 판매하기도 하지만 그걸 작품이라고 할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입니다.  

온 가와라의 작업도 축적된 데이터를 내놓습니다. 하지만 온카와라는 이 '데이터'로 불릴수 있을만한 것이  도대체 어디까지인가라는 데이터의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질문을 던지느는방법은 간단합니다.  데이터를 가공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 던지는 겁니다. 게다가 그 데이타란 것이 만난사람의 이름, 이동과정, I MET / I WENT / I GOT UP 을 15년간 하루도 빠지지않고 기록하고 한페이지에 하루씩 담아서 책으로 묶어서 내거나 날짜를 검은프레임에 하얀글씨로 새겨서 겁니다.  물론 정보기관에서 일하거나 혹은 저질케이블프로그램인 치터스의 담당pd한테는 누가누구를 언제 만났는지 데이터로서 중요하겠죠. 누군가 궁금해 하니까요. 하지만 온카와라는 누구도 궁금해하지않는데다가, 일기에도 쓰면 안된다고 배워왔던 아주 당연하디 당연한 '언제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날짜에 대해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나름 데이터들이 15년간 모인다면 의미가 있는 베이스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걸까요, 아니면 미술작품의 외형과 의미에 지나치게 무겁게 접근하는 우리네 태도를 비웃는걸까요. 의도는 알 수 없습니다. 온카와라는 자신의 작품 설명은 물론 인터뷰도 하지않는것으로 유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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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온카와라는 우리가 그다지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는 그 일상의 데이터를 다른사람의 일상 속에 보내봅니다. 마치 남에게 그의 데이터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건지 알아보려는 실험처럼 느껴집니다.  프로젝트 이름은 Pure Consciousness 인데, 본인의 작업중에 날짜를 쓴 프레임을 전세계 각 도시에 있는 유치원 벽에  내거는 겁니다. 우리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프로젝트를 사진으로 담은 팜플렛으로 볼수있는데 사진속의 유치원 아이들은 모두 온카와라의 작업에는 관심없이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온카와라의 작업은 그야말로 매일보는 벽걸이 시계나 달력과 같이 아니, 그것들은 기능이라도 있지 온카와라의 작업은 아무런 기능도 없이,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못하며 벽에 걸려있는 물건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담으려면 벽에 그림을 걸은 처음 며칠간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며 옹기종기 그림주위에 모여있는 그림도 얼마든지 찍을수도 있겠지만 왜 이런 장면만을 담아놨는지 역시 알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소도 많은데 유치원을 선택한 이유도 알수없고, 제목을 Pure Consciousness 로 정했는지도 알수없습니다.  그리고 같은 그림이 나오는것이 뻔한데 수십개 국가를 돌며 같은 프로젝트를 반복하는지도 알수없습니다.

                           

분명히 알수있는것은 같은 작업을 벽에 걸어놓았지만 갤러리에서 사람들이 모여 무슨 대단한 의미라도 발견하려고 하는듯이 그림앞에 경건하게 서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갤러리에서는 가와라의 작업이 주인공입니다. 갤러리에 오는 모든사람들은 그의작업을 보기위해오는것이며 작업하나하나에 조명을 비춰줍니다. 모두가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갤러리는 작업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유치원에서는 초대받지않은 손님일뿐입니다. 오히려 그미술품이 걸려있는 벽에 모빌하나라도 걸어놓으면 애들 사팔뜨기 방지라도 시켜주는데 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우리가 말하는 미술품의 기능인 인테리어효과는 전혀 볼수없는 것도 과연 미술품이라고 불릴수있는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미술품의 기능은 인테리어 효과에 있는것인가하는 물음과 함께. 

왜 유치원을 장소로 선택했을까요. Pure Consciousness 순수한 마음. 순수한 마음이 온 카와라의 의미있는 저 숫자를 어떻게 보았는지, 미술을 보는 눈이 길러지지않은 아이들의눈에 그의 작업이 어떻게 비춰질지. 어쩌면 온카와라는 자신의 일상이 갤러리라는 포장을 벗어나고 싶어서 유치원이라는 일상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작업이 날것이니 보이는 공간도 날것이고 싶다는 말이지요. 아무리 온카와라의 데이터가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 보여진다고 해도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전시'라는 일정한 포맷으로 가공이 되는겁니다.  이제 다음그의 프로젝트는 새로운 작업이라기보다는 작업 전시공간의 확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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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간의 확장의 일부로 이해되는 프로젝트


그의 모든작업이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이루워진다면 어쩌면 축적된 프로젝트또한 데이터베이스 그 이상도 아닐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매일 자신이 만난사람들을 기록하는 것처럼 각 도시에서의 반응 또한 그에게는 기록일거라는 생각을 했고, 단지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규모상 매일기록하지 못할뿐이겠지요.  따라서 지금은 개별 팜플렛의 모양으로 나오지만 나중에는 일정한 분량이 채워졌을때 책으로 또 내겠지요.  지금까지는 15년이 걸렸는데 pure conscience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요.

온카와라는 개념미술의대가로 여러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얼마전에 박미나와sasa[41]은 온카와라에 헌정? 아니면 그의 영향을 받아 전시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평론가 임근준님의 강의에서 들었는데 웹에서는 못찼겠군요) 하지만  온카와라가 제기한 문제를 시각화한 작가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일상 중에서도 최하위에 있는 기본적인 일상을 어떻게 시각화할건지.  그리고 전시장자체를 무시하는 개념을 어떻게 재창조할건지 그런 작가가 어디있을지 궁금하고또 기대됩니다.

 사족

갤러리 현대와 두아트 서울
에전 갤러리 현대건물에 두아트가들어오고 k auction건물에 갤러리 현대로 이사했습니다.
갤러리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깐 원래 두 갤러리는 한 가족이 경영하는거라고 하더군요. 다른점은 갤러리 현대는 중견 작가 중심, 두아트는 젊고 실험적인 작가중심으로 전시한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On_Kawara
http://www.southlondongallery.org/docs/exh/exhibition.jsp?id=105
http://www.cresumer.com/crezine/designnews1_view.asp?idx=189
 http://www.zwirnerandwirth.com/exhibitions/2001/012001Kawara/index.html
http://www.doartseoul.com/en/
http://www.davidzwirner.com/resources/38395/OK%20bio%20200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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