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은 월간이리 5월호 참조
#1
그림이 없는 미술책이 가끔 좋을 때가 있는데, 글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지에 대한 상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궁금해질 만할 때를 어떻게 알았나 싶게 떡 하니 그 지점에 작품사진이 나타날 때면, 어렸을 때 이런 기억이 떠오르게 한다. 목이 마른 상태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가 엄마가 불러 잠시 물 마시는 순간. 갈증이 풀어주는 물맛이 시원해서 좋긴 한데 놀이 흐름이 끊긴 것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이 섞여있는 그런 감정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다 그림을 보면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그림에 대해 생겼던 호기심이 해소되는 동시에 더 이상 상상은 할 수 없겠다는 약간의 포기도 동반되는 복잡한 마음 말이다.
이대범의 글 모음집 "투명한, 반투명한, 불투명한 미술(2013년, 북노마드)"도 그림 한 점 없는 미술(평론)책이다. 다른 평론가들의 글과 조금은 달랐던 느낌은 상상의 나래가 위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땅굴을 파고 지하로 깊이 들어 간다고나 할까. 분명 그는 작품을 말하고 있지만, 내가 상상하는 것은 작가의 내면이었다.
#2
평론가들마다 미술을 읽기 위해 착용하는 안경이 다르고, 독자들을 안내하는 길이 다르다. 따라서 각 평론가의 이 미술작품에 접근하는 특징을 잘 안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미술품 앞에 자신의 안경에 더해 10명의 평론가면 10개의 다른 종류의 안경을 끼고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재미로 따진다면 내가 가진 하나의 관점만 가지고 10명의 작가의 작품을 대하는 것보다, 1명의 작가라도 10명의 평론가들이 각기 가지고 있는 안경을 하나씩 모아 10개의 다른 종류의 관점으로 미술을 대하면 훨씬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첫 시작은 이대범의 책으로 시작했다. 예전에 김장언의 책 "미술과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현실문화) "을 한번 다룬 적이 있었지만, 단순한 감상문에 가까웠다. 따라서 이번 책은 평론가를 이해하려는 첫 시도이다. 물론 책 한 권으로 누군가의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다. 허나 앞서 말한 야망을 한 쪽 마음에(내가 당신을 파악하겠어!) 지니고서 책에 달려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시점에서 안경? 코드? 관점? 수년간 쌓인 내공을 책 한 권으로 파악하려는, 이대범 평론가가 세월에 걸쳐 담가놓은 장맛의 비법을 꽁으로 먹으려 했다는 생각을 금할 길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사 옆에서 열리고 있는 정연두 작가의 전시하나 보는 건데.
그렇지만 일말의 만족감은 있다. 바로 그의 안경을 내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더라도 적어도 장님 코끼리 만지고 그리는 수준에서 흉내 정도는 내볼만한 요량은 생겼다는 점이다. 미술 감상에 대한 어떤 태도를 배웠다고나 할까? 이렇게 쉽게 접근한다면 평론가들이 글을 어떻게 작성하는지 그 과정을 유추함으로써 나 역시 그 방법으로 작품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랄까.
이대범 평론가의 책에서 그가 미술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한마디로 거칠게 요약하자면 "시골 소년의 투박한 껄떡거림"으로 정리하고 싶다. 사실 글만 놓고 본다면 이 평론가는 유려하고 세련되었다.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직선적으로 툭툭 끊어지면서도 여운을 남기며 착 감기는 그런 문장이 계속된다. 직설적이지 않지만 직선을 그리며 타겟을 관통하여 뚫지는 않지만 그 둘레를 빙 돌아 감는 그의 여유와 비평가로서의 태도가 글 속에 배여 나온다. 사실 이렇게 에둘러 표현하는 이유는 사실 나도 정확히 무엇을 느꼈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상당히 복합적인 정서가 그에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탐사 저널리즘의 애티튜드로 창조한 한 편의 단편소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턴 이 평론가는 장황한 배경 지식의 나열 없이 조준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곧바로 언급하며 글을 시작한다. "시골 소년의 투박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상대방(이성)의 배경 따위는 재지 않고 바로 대상에게 들이대는 뚝심 있는 시골소년 ㅋㅋ 그의 글을 통해 레퍼런스를 넓혀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기대는 많이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 대신 아티스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한가지 관점을 잡는 뚝심을 배울 요량이라면 이대범 평론가 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의 글이 문학작품과 같다는 느낌은 글의 서두에서 시작했다. 처음을 잘 읽으면 그가 말하고 싶은 줄거리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biography가 등장한다. 이 평론가가 얽어놓은 큰 줄기의 주제가 이어지는 동안 작가의 작품이 줄거리 옆에 딸려 들어온다. 그가 만들어 놓은 줄거리를 증명하고 그것을 맛깔 나게 하는 요소가 되어 전체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래서 이대범의 글을 볼 때는 제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초장에 냅다 결론부터 고백해버리는 시골 총각처럼 글의 제목은 여지없이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군더더기 없이 한방에 드러낸다. 거기서 잘 파악하지 못하겠으면 첫 문장을 들여다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의 평론에 보통 3-4개로 구성된 소단원의 제목을 먼저 보면서 그가 설계한 대강의 줄거리를 파악하기도 했다.
그 제목에는 이대범 평론가가 설정해 놓은 작가에 대한 컨셉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의 외형을 통해 그것이 말하려는 바를 읽으려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보다, 이 평론가는 자신이 구축해놓은 논리에 작가를 집어넣고 글 말미에 그 논리를 사실로 만들어버리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감상을 이루는 듯 보였다.
누군가의 행동에 패턴이나 그 근원의 힘을 발견한다는 것. 그것을 말한다는 것은 둘 중 하나이리라. 잘 모르는데 던져놓고 보거나 아니면 작품에 깊숙이 빠져 여러 번 살펴보아 나름의 길을 만든다는 것. 이 평론가는 후자라는 생각이다(당연히). 그의 평론을 읽다 보면 마치 작업 당시의 작가마냥 그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이 종종 나타난다. 그때는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아......수능 이후 오랜만에 써보는 이 말......).
작가와 작업에 대한 다채로운 관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작품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이동기 작가를 다룬 글의 경우 스피디하고 무미건조한 듯 제 3자의 관찰로 글을 진행했다. 반면 김학량 작가의 경우는 자신의 감정을 진하게 투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관점 너머에는 다른 어느 것보다 작가 자체에 대해 집중하는 이 평론가의 집요함이 모든 글에 담겨있다. 대상 작가가 작업을 빛어내게 하는 그 근원적인 힘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이 칼라TV 이던, 어릴 때 가졌던 정서이던 간에 이 평론가는 하나 붙잡은 원칙을 가지고 줄기차게 파고 든다. 선생님으로 따진다면 시험문제를 집어주는 쪽집게식 강사라기 보다 원리를 강조하는 '개념원리형' 선생님에 가깝다.
이런 그의 평론이기에 글로 사진 찍듯이 펼쳐지는 적나라한 묘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대충 뭉뚱그려놓은 작품의 묘사 속에서도 번뜩이는 날카로움이 감지된다. 그 이유는 굳이 세밀한 묘사 없이도 작가의 동기를 파악한 다면 저절로 그 작업이 머리 속에 그려지기 때문이 아닐까?
작품에 대한 적절한 감정이입 역시 돋보였다. 터질듯한 감성을 논리로 꾹 누르고는 있지만 문학적인 감수성이 곳곳에 배여 있고, 이호인 작가를 다룬 글의 경우는 아예 단편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그의 평론을 소설처럼 읽은 줄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에 대한 몰상식한 이해로 인해 끊어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그곳은 폐허만이 남았다. 그런데 한 명의 방랑자가 등장한다. 아무도 그가 어디를 보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있는 주위의 모든 것은 "두텁고 빠른" 붓질로 채워진다. 죽은 주위가 붓질을 통해 숨이 틘다. 그것이 우리가 잊어왔던 풍경이다."
이 정리가 약간의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나 나름대로 이호인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줄거리를 이렇게 잡고 나서 그의 작업 앞에 선다면 훨씬 더 감상하기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들의 안경쓰기는 당분간 계속 될 것 같다.
Ps. 지금까지 손에 잡은 책 중에 이 책이 가장 착 감겼다. 디자인과 크기, 글씨체와 레이아웃까지 맘에 쏘옥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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