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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전시] 정연두 개인전 -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월간이리 2014. 6월)

전문은 월간이리 2014년 6월(링크)

“꿈을 이뤄주는 작가”로 유명한 정연두 작가의 작업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단어로 포장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를 언급하는 말에는 “휴머니즘, 꿈, 희망, 소망, 아날로그, 사람” 등의 단어들이 잊지 않고 들어가 있다. 미술 전시나 관련 매체에서 여간해서는 볼 수 없는 말랑말랑한 단어들이다. 위 수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대부분의 그의 작업은 저 말들이 표면적으로 적용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작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조금 변화를 줄 필요를 느껴 약간 오바해서 붙인 나름 강렬한(또는 강렬하고 싶은) 인트로일 뿐이다.  

그의 작업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라면 문장 어딘가에 반드시 “욕망”이란 단어를 넣을 것이다. 욕망. 참 적나라하고도 뒤가 구린 단어이다. 저 욕망이란 단어는 발냄새를 연상케 한다. 왜 발냄새는 내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도 있고, 혼자 일 때는 더욱더 신나게 즐기지만(?), 남의 것은 얄짤없는 그런 것 아니던가. 정연두 작가는 그 발냄새를 매우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그리고 “남의 냄새도 내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긍정적인 의미로 킁킁대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데 가히 월드 클래스 급의 재주가 있는 작가이다. 

실재로 정연두 작가는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7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을 최연소이자 사진-미디어 부문에서는 처음으로 수상했고, 미국 잡지 《아트 앤 옥션(Art + Auction)》이 2012년 6월호 특집호에서 선정한 '가장 소장 가치 있는 50인의 작가' 중 아시아계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한국 미술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란다(위키피디아 인용). 

포장의 강도는 2000년대 초 ‘Bewitched’와 2005년 ‘Wonderland’ 시리즈가 확실히 세다. 그리고 이 두 작업이 대중들에게 강렬히 각인된 정 작가의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사의 헤드라인처럼 ‘당신의 꿈을 이뤄드립니다’나 ‘꿈을 이뤄주는 작가’라고 하면 뻥이 너무 세다. 하지만 적어도 허무맹랑히 들리는 나의 꿈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미술작가는 흔히 볼 수 있는 부류는 아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동시대 미술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남”에 대한 관심은 정연두 작가의 유일무이함을 만들어내는 큰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속에 빠져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에만 천작하는 동시대 미술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이다. 

그런 정연두 작가가 조금은 나빠졌다. 조금씩 욕망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예전에는 검은 옷도 맡기기만 하면 흰 옷으로 허옇게 세탁해 주었는데 지금은 세탁소 사장이 검은 점을 곳곳에 뭍이거나, 아니면 회색까지만 표백해준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세탁소 사장이 새하얗게 빨아준 흰옷은 표백이 아니라 겉에 하얀 약품을 살짝 덧바른 것과 같다. ‘욕망’이라는 코드로 그의 작업을 보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의 작업의 이면, 즉 사람들의 뱃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욕심이 희미하게 감지되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크레용팝 스페셜(2014)에서 였다. 큰 무대와 영상물, 그리고 음향시설이 설치된 이 작품을 한 20분간 지켜보면서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크레용팝의 노래(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의 노래반주 MR)를 따라 응원 추임새를 떼로 부르는 내 또래 남자들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노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단순히 운전할 때 듣듯 의례히 플레이버튼 누르고 흥얼거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진지했고 어떤 면에서는 광적이었다. 아이돌과 스포츠스타에 열광하는 여자 아해들을 빠순이라고 놀려대던 우리였는데 우리가 그 빠순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빠순이 짓을 하고 있었다. 유치하다고 놀리고 경멸하면서 집에 가서 혼자 즐기다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처음에는 부끄러움의 정체를 몰랐다. 그런데 함께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에 따라 감정이 미묘히 변하면서 실마리가 조금씩 잡혔다. 전시장을 지키고 서있는 사람이 20대 초반의 여자였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닫힌 공간에 나와 알바걸 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자들이 떼 창을 하는 순간이었다. 음향은 왜 그렇게 잘 세팅해 놓았는지 내 앞에서 남자들이 떼 창하는 것처럼 생생했다. 게다가 전시장 천장이 좀 높아…… 어찌나 동굴처럼 쩌렁쩌렁 잘 울리는지…… 왜 이렇게 치부를 들킨 것 마냥 작아지는지, 뒤에 서있는 여알바가 키득키득 비웃는 것 같고, 뻘쭘한 맘 어떻게 하지 못해 좌불안석이었다(덕분에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끄적끄적 애꿏은 펜과 수첩이 고생했다). 

그런데 30대 초로 보이는 보안담당 아저씨가 그 여알바와 교체를 하는 순간 쫄아있는 마음이 확 풀리면서 급 공감모드로 들어갔다. 비록 미술품 만지작 거리나 감시하러 온 달갑잖은 아저씨어도, 여아해가 있을 때보다 한결 편했다. 그가 나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음~ 그렇지’’캬~ 저 부분 진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인데’라고 공감해주는 듯했다. 

팬덤, 오타쿠 등의 신조어가 나올 정도가 되면 이미 그 취향은 사회 저변에 한 부류로서 인지되고 있다는 말이겠다. 그런 면에서 크레용팝의 30-50대 아저씨 팬을 지칭하는 ‘팝저씨’라는 신조어의 등장 역시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특정 취향이 수면위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어감이 퍽이나 재기발랄하고 긍정적이다. 팝저씨.  크레용팝이 무명시절 힘들어도 꿋꿋이 거리공연을 계속하며 분투해온 것에 감동받아 팝저씨를 자청했다지만, 진위야 어쨌던 툭 털어놓고 얘기하면 예전에 좋아한다고 비웃던 걸그룹을 나도 대놓고 좋아하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전시 설명책자는 이 것을 조금 더 하얗게 세탁해주었다. 이 작품이 스타를 통해 ‘성공’을 열망하는 30대 남자의 열정을 시각화했단다. 세련되고 외교적인 표현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군대에서 걸그룹 위문공연 때 소리질렀던 우리 방식, 남자들의 방식대로 좋아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수컷의 욕망(욕정)을 여과 없이 분출하겠다고 하면 너무 적나라한가? 이들의 떼 창은 싸운드 측면에서 보면 군대 떼 창과 진배없다. 여담이지만, 남자들이 모여 떼 창하면 이십명이던 이천명이던 다 비슷하게 들린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번 전시의 동선은 치밀하고 정교했다. 크레용팝 스페셜에서 여 아이돌에 대한 남자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맛보고 갔다면, 다음 이어지는 좁고 긴 복도 끝에 그의 초창기 대표작 hero(1998)가 걸려있다.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 위에 표정 없이, 그러나 공격적으로 앞을 기울여 속도를 내고 있는 이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 남자아이의 사진이다. 얘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을까? 이 아이의 목표는 무엇일까? 마치 길 안내용 화살표처럼 보였다. 

화살표 다음에는 편안하고 아늑한 ‘내 집’이 펼쳐진다(상록아파트, 2001년). 엄밀히 따지면 장기임대아파트라 내 소유는 아니지만 일단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들의 삶은 그 평안함이 일정 수준 보장된다. 오토바이 위의 아이가 향하는 욕망의 끝이 바로 저 1남1녀에 각진 아파트 속에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도쿄브랜드 시티(2002년)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욕망을 사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다른 부류와는 달리 이들의 삶은 모순이다. 물질적 욕망의 끝판왕, 명품을 걸치고 있고 그 속에 파묻혀 살지만 스스로 그 욕망을 이루지 못하는(무슨 말이야?), 명품샵 직원들의 포트레이트이다. 

그 삶은 남이 자신의 욕망을 싸지르는 것을 도와줄 뿐, 자신은 그 욕망을 표출하지 못한 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삶이다. 브랜드가 내뿜는 모양새는 천차만별이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비슷한 이유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브랜드 샵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즐기는 분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일 수 있을 테지만, 적어도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을 볼 때는 자신의 욕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욕망을 살고 있는 억압된 부류에 대한 정연두의 묘사로 읽혔다. 

그의 다른 시리즈들도 있는데 ‘욕망’의 잣대만으로 보기에는 좀 부족하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좀 더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