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수 박에 익숙한 재즈 드러머가 정형화된 4,8,16비트 위주의 팝 또는 락을 연주할 때 내는 톤과 바이브는 매우 독특한 매력이 있다. 스네어 톤의 선택에 있어서도 재즈 드러머는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있는데, 팝을 연주할 때 그 강점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재즈 드러머가 팝을 연주하면 야생에서 갖 잡은 호랑이를 우리에 넣는 듯하다. 정형화된 틀 안에 있지만 그 안에서 활발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앨러니스 모리셋의 투어 드러머로 활동했던 개리 노박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 였다. 불안정함과 애틋함 그리고 순수함 같은 단어가 뒤섞여있는 앨러니스 모리셋의 목소리와 매우 잘 어울리는 드러밍이었다. 앨러니스 모리셋은 90년대 락/팝스타였지만 그 안의 감성은 jazzy 했다. 실제로 퍼포먼스 역시 재즈의 그것과 같이 즉흥적이고 예측할 수 없었다.
드러머와 보컬의 합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앨러니스가 개리 노박과 함께 했던 라이브가 가장 듣기 편하다. 어찌보면 역설적인 표현이다. 변칙적인 플레이를 밥먹듯 하는 재즈 드러머와 그에 못지 않게 vulnerable한 앨러니스가 찰떡 궁합이라니.
특히 내가 좋아하는 앨범과 곡은 MTV Unplugged 중 Princess Familiar와 VH1의 Storyteller 중 Thankyou 이다. 사실 전 곡을 좋아하나, 이 두 곡에서 개리 노박의 특장점이 잘 드러난다. 개리 노박은 스네어를 언제 꽂아 넣을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물고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쇠꼬챙이를 푹 던지는 사수처럼 스네어를 때리는데 그 타점과 타이밍이 설득 당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어쿠스틱과 소규모 실내공연에서 빛을 발하는데 아무래도 마이킹 없는 생톤 연주에 익숙한 재즈드러머라 그런 공간을 더 편하게 느껴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베이시스트인 Chris Chaney의 알멩이 굻직한 톤과도 보합이 좋다. Chaney의 연주는 전반적으로 가느다란 선에 가까운 개리 노박의 연주를 더 풍성히 해준다. Chaney가 그를 앨러니스의 투어밴드에 소개해주어서 들어왔단다(인터뷰).
'책&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러머] 푸파이터스의 테일러 호킨스Taylor Hawkins 사망 (2) | 2022.03.26 |
---|---|
[음악] things we say. 한국의 유스크루 (0) | 2022.03.08 |
[드러머] 스티브 조던, 행간을 채우는 드러머 (0) | 2021.12.14 |
[드러머] 이도헌. the omni-virtuoso (2) | 2021.07.15 |
[드러머] 황정관. invisible band master (2) | 2021.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