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만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작업들을 공감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유명한 그녀의 사진은 모두 퍼포먼서의 한 순간을 기록한 것이기때문에 그녀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퍼포먼스를 꼭 보고 넘어가고 싶었지요. 그는 사진작가이기 보다는 비디오 아티스트에 더 가깝기 때문이지요. 이번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에서 실제 퍼포먼스는 아니지만 dvd영상으로나마 그녀의 퍼포먼스를 보게되어 훨씬더 VB의 작업들이 친근감있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누드가 얘술가들에게는 꽤 괜찮은 소재인 것은 예나 오늘이나 다를바가 없는것 같습니다. 어떤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창조한 절대 아름다움의 하나로, 어떤사람에게는 한없는 친밀함의 표현으로, 어떤이에게는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또 어떤이들에게는 그렇고 그런..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목적으로. 생각해보면 누드만큼 다양하게 해석되는 표현양식이 있을까 싶네요. vb또한 누드를 다뤄온 수많은 작가중 하나지만 누구도 바네사 같은 접근은 없었지요.
vb의 영상은 배경별로, 모델의 수와 외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주로 다음고과같은 큰 줄거리가 있더군요. 먼저 적게는 열댓명에서 많게는 수십명까지 특정한 세트(사방이 투명한 미술관 내부일수도, 대도시 한가운데 있는 구조물일수도..)에 세워놓습니다. 누드 상태로요. 어떨때는 옷을 입히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이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런 옷이지요. 그리고 그냥 찍는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모델들은 앉아서 쉬기도, 눕기도 하고 취하기 편한 자세들을 취하지요. 여전히 누드로요.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각기 모델들이 취하는 동작을 천천히 컴퓨터로 스캔하듯이 훌습니다. 아주 천천히 머리에서 발끝까지. 마치 태어나서 이런 자세는 처음본 사람마냥 아주 천천히 찍는거죠.
때로는 모델한사람의 특정자세를 찍을때도, 아니면 전체 군중이 저마다 취하는 자세들을 관찰합니다. 아주 천천히. 모델들은 모두 옷을 벋어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지만 한사람한사람의 동작들을 관찰하며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의 사람일지 짐작은 할수 있지요. 계속보다보면 어느덧 우리는 모델한사람한사람이 취하는 자세가 그렇게 아름다운 조각상, 혹은 그 유명한 누구의 그림속의 모델일거라는 착각을 합니다. 사람의 몸이 만들어내는 각양각색의 포즈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그리고 어느누구도 같은 포즈를 취하지 않는 그다양함이 주는 활기찬 기운. 물론 카메라는 무진장 천천히 움직입니다. 하지만 꽤 많은 모델들이 만들어는 움직임은 느린 카메라 워크와는 비교할수 없을정도로 활기찹니다.
재미있던 것은 자연스러운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누드퍼포먼스와는 달리 옷을 입혀놓으니 사람들이 달라지는 겁니다. 가나아트에서는 방을 두개로 나누어 한곳에서는 해군제복을 입은 모델을 촬영한 영상을, 한곳에서는 앞에서 말한 누드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두 영상속의 모델들의행동이 많은 차이가 나더군요.
같은 방식으로 모델들을 정렬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카메라는 관찰하기 시작하지만 제복입은 해군들은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영상인지 사진인지 알수 잇는 방법은 퍼포먼스에 참여한 군인들이 눈을 깜박일때 뿐이지요. 부동자세를 취하라는 지침을 줄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역동적이고 생기있는 누드를 주로 보고 이제는 망가지겠지하는 생각이 들때 해군영상을 보았는데 끝까지 움직이지 않더군요. 결국 한 사십분 보다가 나왔지요. 바니사는 퍼포먼스 전에 모델들에게 주는 지침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누드퍼포먼스때는 천천히 움직여라, 말하지 말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옷을 입은것과 같이 행동하고, 힘들때 쉬고 누워도 된다등등의 행동지침을 주었지요. 누드퍼포먼스와는 전혀다른 모습에 군인들에게는 어떤 지침을 주었을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차렷자세를 유지하라, 힘들며면쉬어라.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지 말라.. 어떤 지침일까 궁금하기만 합니다.
상반되는 이 두영상을 보면서 사람이 옷을 입혀놓느다는게 오히려 인간 본연의 자유함과 멀어지게하는, 그리고 어떤 정형화된 틀에 옭아메는 무언가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언제부터 옷을 입었는지 생각해보면 옷의 시작은 성경 창세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말라던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후 처음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잎사귀로 몸을 가렸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내쫓겨 졌지요.
그와 함께 할필요도 없었떤 노동도, 아이낳는 아픔등의 짐을 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옷은 하나님과 함께 살앗던, 동행하던 진정한 자유함에서 멀어지는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바네사의 퍼포먼스가 이뿐 모델들이 나와서 옷을 훌러덩 벗고 서있는 모습에 살짝 어색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계속 보다보면 한없이 포근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처음 만들어졌을때 모습과 같은 것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특히 모델들 모레더미위에 올려놓고 찍은 영상 속에서 모델들은 모레더미에 편안히 눕고, 모레로 손장난을 치는 등 더없이 편안한 자태를 보여주는 영상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또한 의복은 인간의 자유함을 앗아가는 것임과 동시에 더 나아가 특정한 행동이나 태도를 행하도록 하는 것도 되더군요. 바네사의 해군 퍼포먼스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군복을 입으면 무조건 긴장되고 무언가 위엄있는 표정을 지어야만 되는 그런 행동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누구라도 영상속의 해군들처럼 딱딱한 포즈를 취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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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는 독일 뒤셀도르프출신의사진작가군의작품과더불어 가장 활발히, 그리고 비싼 작가중 하나입니다. 바네사와 뒤셀도르프가 주로 다루는 피사체는 전혀 다르지만 두 작가군 모두 피사체가 주는 이미지에 주목ㅎ산다는데 공통점이있다고 하겠네요. 어쨌거나 대상의 외적 이미지(점, 선, 면,색)으로 묘사되는 착안하는 것이 근래 주목받는 사진작의 추세로 보여졌습니다.
물론 바네사의 영상을 함께 보면 여타 작가들과 찹별화된 무언가를 느낄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볼때는 분명 인간의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을 느낀다면,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을 보다보면 우리에게 어느덧 참 자유함에 대한 동경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까요. 재미있는 것은 사진작품은 바네사가 직접찍은것이 아니더군요. 영상촬영은 바네사가 했지만 사진은 모두 다른사람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작품이 팔리면 도대체 누구의 작품인 것인지.
얼핏보면 바네사의 작품은 요즘 많이 보아오는 아주 객관적이다 못해 기걔같은 계산된 몰감정 시각예술의 선두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한사람한사람의 세밀한 동작을 놓치지않고,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영상을 통해 표현한 그녀의 작품이야말로 사람의 아름다움 자체에 관심을 가진 독창적인 작가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