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사진전에 다녀온 이유는 순전히 이윤진의 사진을 실제로 보기 위해서였다. 이윤진의 프린트는 잡지 화보 혹은 모니터에서 보는것보다 훨씬 커서 어떻게 보면 제목에서 나타나는 'still-life'(정물)의 느낌이 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일부러 찾아와 보려한 이윤진의 사진은 달랑 두점걸려 사진감상할 시간이 많이 남아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갤러리를 모두 돌아보기로 했다.
관람 종료시간까지 1시간여가 남았으니 5군데 갤러리의 모든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좀 무리여서 빠르게 스캔한다는 느낌으로 전시작을 훓어보았다.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긴 했으나 전반적인 분위기를 나름대로 잡을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먼저 참여작가 모두 주제와 찍는 방식은 다르지만 젊은 사진작가가 많다 보니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기 색깔 찾기 작업이 너무 많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방법들이 대부분 작가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는 연출사진의 방식, 그리고 키치적인 분위기의 사진이 대다수를 차지하여 작가 본연의 색을 뽑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아름다웠으나, 획일적인 느낌이 좀 아쉬웠다.
인상깊었던 전시는 패션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는 이제 없다라고 주장한 한 에이젼시의 전시(하이브리드 전) 이었는데, 미적 아름다움, 완성도로 보는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진이라면 어떤 것도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사진전시방식도 무척 남달랐는데, 사진을 프린트하지 않고 프로젝터를 사용해서 '상영'한 방식은 사진의 예술적인 가치는 하드카피로서의 '사진'보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진가'의 창조성에 있다라는 그들의 주장을 십분 뒷받침하는 행동이었다. 물론 한정된 공간과 시간에 보다 많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경제적인 이득 외에도, 상업사진가의 포트폴리오를 보는듯한 느낌에서 자연스레 사진가를 홍보할 수 있는 장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어서 신선했다.
이밖에 젊은 신예작가의 사진을 전시한 한 사진 에이전시의 사진 판매겸 전시장도 인상깊었다. 좋아하는 BoLee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이 걸려있다기에 찾아갔는데 막상 그녀의 사진보다는 다른 작가의 사진들이 눈에 더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사진을 통하여 요즘 미국을 비판하는 아니타 신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멋부림 가득한 혹은 창조를 쥐어짜낸듯한 젊은 작가들의 사진들 속에 수수하고 진솔한 느낌 사진을 보면서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피에 잠긴 성조기 앞에서 예수님이 거꾸로 못박힌 사진을 보았을때 처음에는 성조기가 미국으로 보였으나, 그 성조기에 내 얼굴이 자꾸 겹쳐졌다.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내 욕망을 드러내려하는 것이 아닌가, 내 의를 드러내는것이 아닌가. 게다가 성조기 앞의 십자가는 거꾸로 해서 예수를 바로 전하지도 못하면서..
아니타신은 독일에서 공부를 했다는 정보외에는 알려진바가 없고 현재 상업사진가로 활동하는 듯하다. 쿨해보인고 끼가 넘쳐흐르는 젊은 작가들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순수한 맛이 있었고, 무엇보다 보면볼수록 사진자체의 미적 의미보다 더 깊은 신앙의 도전을 주어 감동이 깊었다.
사진 생김새 또한 심각한 주제를 자연스러운 빛감으로 담아내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으며,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볼프강 틸먼스, 이윤진이 즐겨 사용하는 '정물'사진도 있어서 반가웠다. 물론 그의사진은 작가의 구성으로 메시지를 담는데 신경쓰다보니 위의두명의사진가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맛, 그리고 생김새에서 오는 여유와 여백의 느낌은 덜했지만 근래 사진에서 보기 드문 전통적인 정물화의 느낌이어서 오히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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